2016년 1월 17일 일요일

[영화] 카핑 베토벤 Copying Beethoven 2006

<출처:http://www.gstatic.com/tv/thumb/movieposters/159657/p159657_p_v8_ac.jpg>
  나는 음악을 즐겨 듣지만 음악에 관한 지식은 문외한 사람이다. 더군다나 음악에서, 책으로 따지면 고전 인문학과 같은 클래식에 관한 지식은 정말 거의 없다. 클래식을 가끔 듣지만 그게 무슨곡이고 누구의 작품인지 따지지 않고 내 취향에 맞으면 그저 틀어 놓고 책을 읽거나 다른 작업을 하거나 했다. 그러다 문득 '적어도 작곡가 이름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YES 24 의 '클래식 가이드'라는 웹진을 알게 되었다. 이 '클래식 가이드'는 나처럼 문외한인 사람들에게 한 수저 한 수저 씩 클래식을 떠먹여주는 아주 고마운 가이드 였다. 그중에서도 '베토벤 교향곡 9번'에 관한 가이드를 읽다가 'Copying Beethoven' 이라는 영화를 알게 되었고, Wilhelm Furtwangler의 Beethoven symphony No.9 'Choral'을 들으며 (다른 지휘자의 앨범은 들어보지 못했으나 '클래식 가이드'에 따르면 Wilhelm Furtwangler의 앨범이 명반이라고 한다.) 'Copying Beethoven'을 감상할 준비를 했다.

  영화는 여주인공인 Anna Holtz (Diane Kruger)가 마차를 타고 베토벤에게 향하면서 시작된다. 이때 들리는 바이올린 소리는 불안한듯 규칙적이게 베토벤의 죽음을 예고하듯 연주된다. 베토벤의 죽음으로 시작한 영화는 다시 1824년 베토벤이 교향곡 9번을 작곡하던 비엔나로 돌아간다. 
  
<출처: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6/6f/Beethoven.jpg>
<영화속 베토벤>

  영화에서 보여준 베토벤의 이미지는 내가 중학교 음악책에서 보았던 베토벤의 이미지와 상당히 닮아있었다. 중학교때 본 초상화속 베토벤의 이미지는 신경질적이고 고집이 강한 인상이 깊었는데 영화속 베토벤 역시 괴팍하고 호탕한 이미지를 보여주었다. (술집에서 베토벤은 한 남자와 팔씨름을 하기도 한다.) 다만 베토벤이 귀가 들리지 않는 것을 묘사하는 것이 조금 어설프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영화속에서 베토벤은 커다란 나팔관을 들고 다니며 귀에다가 대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나팔관을 사용해 대화하는 것은 아주 가끔씩이었다. 게다가 가끔 속삭이며 말을 하기도 했다. (응?) 또 베토벤이 가끔씩 윗옷을 벗는 장면이 나오는데 상당히 근육질이었다. (베토벤이 운동에도 관심이 있었나?) 영화를 위해 근육질이었던 Ed Harris가 급히 살을 찌운 것 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런 옥의 티만 빼놓고 본다면 Ed Harris가 연기한 베토벤은 아주 매력적이다. 

  베토벤의 괴팍함을 받아주며 베토벤의 악보 필사를 하는 Diane Kruger가 연기한 Anna Holtz 또한 상당히 매력적인 캐릭터였다. (예뻐..) 극중 Anna Holtz는 베토벤에게 추궁을 당하는 장면이 있는데 순간적인 감정 연기가 너무나 와닿아서 베토벤에게 '왜 그래요 아저씨!' 라고 소리치고 Anna Holtz을 안아주고 싶었다.
  베토벤이 집을 비운사이 베토벤의 집을 청소해주는 Anna Holtz의 모습 또한 남자라면 '심쿵'하지 않고는 지나갈 수 없는 장면 이었다.
<청소하는 여자는 아름다웠다.>
 베토벤이 Anna Holtz를 신명나게 울린 뒤에 Anna Holtz 에게 하는 이야기가 내가 생각하는 이 영화의 명대사다. 베토벤은 Anna Holtz 에게 말한다.
'The vibrations on the air are the breath of God speaking to man's soul. Music is the language of God. We musicians are as close to God as man can be. We hear his voice. We read his lips. We give birth to the children of God who sing his praise. That's what musicians are, Anna Holtz.' 
(공기중의 떨림은 신이 인간의 영혼에게 말을 하는 걸세, 음악은 신의 언어지. 우리 음악가들은 신에게 가장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인간이야. 우리는 그분의 목소리를 듣고, 그분의 입술을 읽어 그분을 찬양하는 아이들에게 생명을 불어 넣어주는 걸세, 그것이 바로 음악가인거야 Anna Holtz) 
 물론 베토벤이 직접이야기 한 것은 아닐테지만 이 대사를 통해서 음악을 신과의 매개체로서 경건하게 대하는 베토벤의 마음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실제로도 베토벤은 이렇게 느끼지 않았을까?

 베토벤이 Anna Holtz의 도움으로 교향곡 9번을 사람들에게 선보이는 장면은 단연 이 영화의 핵심이자 명장면이다. 귀가 들리지 않아 제대로 지휘를 할 수 없던 베토벤은 지휘를 포기하려 하지만 Anna Holtz는 자신이 앞에서 지휘를 도와줄 테니 함께 무대로 올라가자고 한다. 연주가 시작되고 베토벤과 Anna Holtz가 서로를 바라보며 지휘를 시작한다. 곡이 계속 될 수록 베토벤과 Anna Holtz의 교감 또한 점점 깊어지며 영화를 보는이 또한 그들의 손짓에 점점 집중하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4번째 악장의 합창부분이 터져 나온다. 합창을 시작하기전 카메라가 합창단을 한사람 한사람씩 클로즈업 하다가 Anna Holtz의 지휘가 격렬해지며 시작되는 하이라이트 부분은 내게 벅차오르는 무언가를 느끼게 해주었다. 그리고 마치 내가 베토벤이라도 되는 것 처럼 베토벤의 지휘하는 모습을 카피(copy)해 손을 휘젓게 만들었다.

  Copying Beethoven은 지루할 수 있는 클래식이란 소재로 베토벤과 Anna Holtz 사이의 관계 그리고 그들과 교향곡 9번 사이의 관계를 가지고 이야기를 만들고 내용의 전개 또한 전혀 지루하지 않고 몰입감있게 흐르며 영화의 전체적인 색은 어둡고 잔잔하지만 배우들의 명연기가 자연스럽게 스며든 영화였다.

2013년 6월 24일 월요일

[영화] 루비 스팍스 (Ruby sparks)



 영화 표지만 보더라도 기욤뮈소의 <종이여자>가 단번에 떠올랐다.
처음 영화가 시작될때 '<종이여자>의 영향을 받았다'라는 글이 나올줄 알았는데 나오지 않아서 '그럼 영화가 끝나면 엔딩크레딧에 나오겟군' 하며 감상을 했는데 끝내 나오지 않더라, 궁금해서 웹 검색을 해보니 둘은 전혀 관련이 없는 소설과 영화였다. 

 하지만 너무 같은 주제가 아닌가! 군시절 나의 가슴을 달달하게 만들어준 <종이여자>와 구성 자체가 너무 비슷하다. 근데! 루비 스팍스의 이 현실감은 뭐지?! 내가 솔로라서 더 잘 와닿았는지는 몰라도 영화를 보는 내내 영화속 작가의 마음이 완전하게 공감됐다.

 <종이여자>를 읽었을때에는 '오, 달달한데?' 하며 읽다가 아빠 미소로 '잘 읽었다.' 하고 말았는데, 루비 스팍스는 영화이지만 너무나 현실감 있어서 영화를 보다가, '혹시, 내가 지금 영화 보는 것도 누가 소설로 써놓은거 아냐?' 라고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스포일러 포함) 
 루비 스팍스는 작가가 꿈에서 본 여자에게 영감을 받아 만들어낸 소설속 인물인데 어느 날 갑자기 현실에 나타난다. 작가는 소위 멘붕 상태가 되고 자신이 미친게 분명하다고 생각해 정신을 차리려고 애를 쓰지만 다른이들이 루비와 대화하는 걸 보고 루비가 꿈이나 환상이 아닌 진짜라는걸 알게 된다. 작가는 자신이 바라던 완벽한 루비에게 단번에 사랑에 빠지고 둘은 행복한 시간을 보내게 된다. 하지만 여느 커플이 그렇듯 루비도 작가와의 반복된 일상에 지루함을 느끼고 작가와 점점 멀어지려 한다. 작가는 루비가 자신을 떠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그가 바라는 루비의 모습을 소설로 써나간다. 하지만 작가가 루비에 대해 그가 원하는 대로 쓰면 쓸수록 루비도 작가도 서로 불행해진다. (난 이 부분에서 가장 공감을 많이 느꼈다. 서로를 서로가 원하는 대로 바꾸려고 하면 점점 불행해 지지 않던가!) 결국 작가는 루비를 놔주기로 하고

'She was no longer Calvin's creation, She was free.'
'그녀는 더이상 케빈(작가)의 창작물이 아니었다. 그녀는 자유의 몸이 되었다.'

라고 타이핑을 한다. 루비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고, 작가는 그녀와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완성한다.

<종이여자>와 루비 스팍스는 너무나도 많이 닮아있고, 사실 종이여자가 2010년에 출판되었고 루비 스팍스가 2012년도 영화이니 표절이라면 표절이라고 할수도 있겠지만, 루비 스팍스는 루비 스팍스 만의 질문이 있는것 같다. 정말 사랑하는 사이라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 지에 대한 물음 말이다. 사실 나도 그랬고 주변을 보더라도 일단 사귀고 나면 서로를 구속하고 서로의 규칙에 상대방을 끼워 맞추려고 노력한다. 마치 동그라미 구멍에 삼각형 도형을 억지로 집어넣으려는것 처럼, 하지만 그러다 보면 모형이 박살이 나든 내 손이 박살이 나든 어느 한쪽은 상처를 입게 마련이다.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는것, 이해 하기는 쉽지만 내가 하기에는 어려운 정말로 상대를 사랑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 해주는 영화 였던것 같다.